라벨은 이 곡을 두고 음악이 없는 관현악곡이라고 했다.
1928년, 무용수 이다 루빈슈타인이 에스파냐풍 발레 음악을 주문했다. 라벨은 처음에 다른 작곡가의 곡을 편곡하려다 생각을 바꿔 새로 썼다. 그가 택한 방법은 극단적이었다.
선율은 두 개뿐이다. 그 두 선율이 번갈아 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된다. 열여덟 번. 전개도 변주도 없다. 조성은 거의 끝까지 한 자리에 머문다.
작은북이 첫마디부터 마지막까지 같은 리듬을 친다. 십오 분 넘게 멈추지 않는다.
그러면 무엇이 바뀌는가. 악기와 음량뿐이다.
플루트 하나로 시작한다. 클라리넷이 받고, 바순이 받고, 오보에 다모레가 받는다. 점점 더 많은 악기가 겹치고, 나중에는 쓰이는 일이 드문 악기들까지 동원된다. 색소폰 세 종류가 나온다. 소리가 조금씩 두꺼워지고 커진다.
마지막에 이르러 조성이 한 번 미끄러진다. 그 단 한 번의 변화가 쌓여 온 긴장을 터뜨리고, 곡은 무너지듯 끝난다.
초연 때 어느 여성이 미쳤다고 소리쳤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라벨은 그 사람이 곡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이 곡이 실험이라고 했다. 음악적 내용 없이 관현악 효과만으로 끝까지 갈 수 있는지.
실험은 성공했고,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해졌다. 정작 그는 그 사실을 마뜩잖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