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노시엔느 1번

에릭 사티 · 1890 · Gnossienne No.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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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악보에는 박자표도 마디선도 없다.

보통 악보는 세로줄로 마디를 끊고, 맨 앞에 몇 박자인지 표시한다. 연주자는 그 격자 위에서 음을 읽는다. 사티는 1890년 무렵 쓴 이 곡들에서 그 격자를 치웠다. 음표만 가로로 이어져 있다.

조표도 없다. 어느 조인지 명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연주자는 어디서 숨을 쉬고 어디서 무게를 둘지 스스로 정해야 한다. 지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지시의 종류가 다르다. 사티는 악보 곳곳에 말을 적어 두었다.

매우 빛나게 물어보듯이 생각의 끝에서 혀끝으로

연주 지시라기보다 혼잣말에 가깝다. 소리를 어떻게 내라는 설명이 아니라 어떤 상태로 있으라는 주문이다. 사티는 평생 이런 식의 지시어를 썼고, 이것이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지금도 의견이 갈린다.

제목인 "그노시엔느"는 사티가 만든 말이다. 사전에 없다. 크레타의 크노소스에서 왔다는 설이 있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그는 《짐노페디》 때처럼 고대의 울림이 있는 단어를 지어냈다.

선율에서 증2도가 들린다. 반음 세 개만큼 벌어진 음정으로, 서유럽 음악보다 동유럽이나 중동 음악에서 자주 나온다. 그 음정 하나가 곡 전체를 낯설게 만든다.

왼손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오른손 선율도 거의 같은 형태로 돌아온다. 발전하지 않고, 결론에 도달하지 않는다.

사티는 당시 몽마르트르의 카바레에서 피아노를 치며 살았다. 음악원에서는 재능이 없다는 평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