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빛 머리의 소녀

클로드 드뷔시 · L. 117 · 1910 · La fille aux cheveux de 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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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시에서 왔다.

르콩트 드 릴이 쓴 《스코틀랜드의 노래》 연작 중 한 편이다. 아마빛 머리를 한 소녀가 체리처럼 붉은 입술로 여름 햇빛 속에 앉아 있고, 화자가 그에게 사랑을 말하는 짧은 시다.

드뷔시는 젊은 시절 이 시에 가곡을 붙인 적이 있다. 그러고는 이십 년쯤 지나 같은 제목으로 피아노 곡을 썼다. 이번에는 가사가 없다. 노래하던 것을 건반으로 옮긴 셈이다.

이 곡은 《전주곡집》 1권에 들어 있다. 쇼팽이 스물네 개의 전주곡을 쓴 것과 이름은 같지만 성격이 다르다. 드뷔시의 전주곡에는 제목이 붙어 있다.

그런데 제목을 적어 놓은 자리가 특이하다. 악보 맨 앞이 아니라 각 곡의 마지막에, 그것도 괄호와 말줄임표 안에 적어 두었다. 먼저 읽고 그에 맞춰 들으라는 것이 아니라, 다 듣고 나서 확인하라는 배치다.

그가 "인상주의"라는 딱지를 싫어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음악이 무언가를 묘사하는 그림이 되는 것을 경계했다.

선율은 거의 처음부터 등장하고, 반주라 할 만한 것이 두텁지 않다. 화성은 기능이 흐릿하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한다는 압력이 거의 없어서, 음들이 서로를 당기지 않고 그냥 놓여 있다.

두 쪽 반짜리 곡이다.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그래서 끝나는 자리가 시작한 자리와 멀지 않다.

조용히 끝난다. 마지막 화음은 해결되기보다 그냥 멎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