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스물네 살의 라흐마니노프는 첫 교향곡을 초연했다. 참담하게 실패했다.
지휘자가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말도 있고, 술에 취해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평은 가혹했다. 어느 평론가는 이집트의 열 가지 재앙을 음악으로 옮긴다면 이런 소리가 날 것이라고 썼다.
그 뒤로 그는 삼 년 가까이 거의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피아노는 쳤지만 작곡이 되지 않았다. 우울이 깊었고 술을 마셨다.
가족이 니콜라이 달이라는 의사를 소개했다. 그는 최면 요법을 쓰는 신경과 의사였고, 아마추어 중에서도 수준 높은 비올라 연주자였다. 라흐마니노프는 1900년 내내 그를 찾아갔다. 치료는 단순했다고 전해진다. 긴 의자에 눕히고 반복해서 말해 주는 것이다. 당신은 협주곡을 쓸 것이다. 잘 써질 것이다.
그해 그는 2악장과 3악장을 먼저 완성했고, 이듬해 1악장을 붙여 전곡을 초연했다. 성공이었다.
악보 첫 장에는 니콜라이 달에게 바친다고 적혀 있다.
2악장은 현이 화음을 깔고 피아노가 그 위에 음형을 펼치면서 시작한다. 선율은 피아노가 아니라 플루트가 먼저 내놓는다. 피아노는 반주 쪽에 가깝게 머문다. 협주곡의 느린 악장에서 독주자가 뒤로 물러나 있는 구성이다.
선율이 피아노로 넘어오는 것은 한참 뒤다. 그때쯤이면 이미 그 선율을 세 번쯤 들은 뒤다.
라흐마니노프의 손은 유난히 컸다. 보통 연주자가 짚기 어려운 간격의 화음이 그의 악보에 자주 나오는 이유다. 이 악장에도 손이 작은 사람에게는 까다로운 자리가 여럿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