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칼리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 Op. 34 No. 14 · 1912 · Vocal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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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가 없다.

라흐마니노프는 1912년에 열네 편의 가곡을 묶어 냈다. 열세 편은 러시아 시인들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마지막 열네 번째 곡에는 시가 없다.

보칼리제는 모음 하나로만 부르는 노래를 뜻한다. 원래는 성악 연습곡의 형식이었다. 자음을 쓰지 않고 아, 또는 어 하나로 음정과 호흡만 훈련하는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는 그 형식을 가져와 연주회용 작품으로 썼다.

가사를 없앤 결과는 묘하다. 노래인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의미를 담는 통로가 막히면서 선율 자체가 전부가 된다.

초연은 소프라노 안토니나 네즈다노바가 불렀다. 전해지는 이야기로, 그는 가사가 없는 것을 아쉬워했고 라흐마니노프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말이 있으면 당신 목소리와 음악이 전하는 것보다 적게 전해질 것이라고.

이 곡은 이후 온갖 편성으로 옮겨졌다. 바이올린, 첼로, 오보에, 색소폰, 관현악. 원래 사람 목소리를 위한 곡인데 목소리 없이 연주되는 경우가 더 많다. 가사가 없으니 어느 악기가 맡아도 잃는 것이 없다.

선율은 길다. 쉬지 않고 이어지며 자꾸 위로 올라가려다 내려앉는다. 해결되는 듯하다가 다시 밀려 나가고, 그 과정이 반복된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같은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쓰고 몇 해 뒤 러시아를 떠났다.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